사람은 모두 자신이 생각하기에 편한 쪽을 중심으로 새로운 것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된다. 이는 전문성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지만, 자신의 우물 밖에서 새로운 것을 생각하기에는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근래에는 내가 몸 담고 있는 파사드 엔지니어링 분야의 전망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보는 중이다. 건축과를 나와서 파사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건축의 입장에서 파사드 엔지니어링을 바라보고, 또 여기서 다시 오늘날의 흐름인 컴퓨터 과학이나 IT 산업을 바라보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순서를 한번만 바꿔보기로 했다. 잘 알지 못하는 분야에서 내 분야를 내려다보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나는 컴퓨터 과학 전공자도 아니고, 그 분야에 이제 막 발을 디딘 한 마리의 미어캣이다. 그런 내가 컴퓨터 과학을 이해한 바를 한 단어로 압축해보자면 컴퓨터 과학은 그야말로 '시스템'이다. 시스템에서 바라본 파사드 엔지니어링은 글쎄, '스킨 시스템' 정도가 되지 않을까? 스킨 시스템에서 건축을 바라본다면? 건축은 어떤 스킨 시스템이 공간을 감싸고 있는 모습일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건축에 뭍혀있어 잘 보이지 않았던 파사드만의 가치가 돋보이게 된다. 파사드 하면 당연히 건축물의 파사드만을 생각해왔는데, 그저 무엇인가를 감싸고 있는 스킨 시스템이라고 생각해보니, 파사드는 어느 곳에나 널려 있었다. 자동차도, 배도, 도시도, 건물도, 로켓도 모두 스킨 시스템에 둘러 쌓여있는 또 다른 시스템들의 총체인 것이다.
스킨 시스템을 설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공학적인 지식들이 필요하다. 공기 역학, 구조, 열, 환경 분석, 기밀/수밀 이슈 등이 그것이며, 여기에 디자인도 포함된다. 컴퓨터 과학이 위에 열거된 공학적인 시뮬레이션 툴들을 만드는 시스템을 개발한다면, 파사드 엔지니어들이 개발하는 시스템은 컴퓨터 과학의 설계 프로세스를 가지고 위의 항목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하나의 완결된 스킨 시스템을 개발하고 제안하는 것이다. 앞으로의 파사드 엔지니어들은 넓은 의미에서의 스킨 시스템 개발자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들이 이렇게 만든 수많은 스킨 시스템들을 데이터 베이스로 구축한다면 각 상황에 맞는 스킨 시스템을 자동적으로 모듈화하고 즉각적으로 공장 제작이 가능하도록 3d 모델을 generate(생성) 할 수도 있을 것이다. BIM 과의 협업이 필요한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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